류가 준비한 뜻밖의 선물

오늘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류는 보낼 서류가 있어서 우체국에 가고 혼자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벨이 울리더군요. 보통 같으면 한참 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요즘 일찍 일어나기 운동을 하는지라 8시에 일어났더니 제시간에 우편물을 수령할수 있었네요. 


우체부가 전달해준건 납작하고 커다란, 류 앞으로 온 소포였어요.받자마자 딱 생각이 나더라구요. 류가 지난 크리스마스때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늦어진다고 했었거든요. 사실 저는 별 기대도 하지 않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들었습니다. 이미 류에게 무선마우스를 선물로 받았거든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일까요? ㅜㅠ) 그건 마치..우리 아빠가 엄마 생일선물로 좋은 밥통을 사준것과 같은 느낌이랄까...ㅎㅎㅎ 는 아니고요, 제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종종 집에서 일하기 따분하거나 졸릴때, 날씨가 좋을때는 카페에서 일하는걸 좋아하는데 주렁주렁 선이 달린 마우스를 챙겨가기가 여간 귀찮아야 말이죠.. 평소에 제가 갖고 싶다고 한 향수까지 같이 주는 센스! 재미있으면서도 무뚝뚝한거 같고, 장난끼 가득하면서도 어른스럽고 센스있는 류입니다. 하하하


어쨌든 룰루랄라 하는 마음에 소포를 얌전히 테이블위에 올려다놓고 류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류에게 제가 선물을 받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ㅋㅋ 납작하고 커다란, 그치만 무게는 별루 무겁지 않은, 당최 감이 오질 않더라구요. 류는 작은 것들로 저를 감동시키는 일이 많아요. 정말 작은 것들이요. 가끔 혼자 외출해야 할때 침대 위나, 냉장고에 작은 메모를 남겨서 저를 웃게 해주기도 하고요, 일찍일어난 날은 혼자 베이커리에 가서 갓구운 크라상을 사와서 커피를 만든 후 저를 깨웁니다. 하지만 류는 절대 본인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맨틱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요. 아니 아일랜드 남자에겐 로맨틱이란 있을수 없어! 랄까요.. 근데 이런 사소한 것들에게 저는 행복을 느껴요. 너무너무 일하기 싫은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류가 서툰 한글로 쓴 메모를 발견하면 그 날의 짜증이 확 사라진달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류가 왔네요. 와서는 대사관으로 보내는 우편료가 너무 많이 나왔느니 우체국에서 불어로 얘기하기 너무 힘들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소포를 짠! 하고 보여주었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히려 본인이 더 설레여하네요. 


"뜯어봐도 돼?

"잠깐, 잠깐, 내 말부터 들어봐. 사실 이거 작년에 결혼 선물로 주려고 한건데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어. 비싸고 대단한건 아니야 절대. 너무 기대하지마.."

"알아 알아~ 나 실망안해~"

역시 류 입니다. 항상 먼저 밑밥을 깔아두지요. 밑밥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죠. 저는 촛불로 하트를 만들어 케익을 준비하고 풍선으로 장식한 그런 준비된 이벤트보다는 요런것들이 너무 가슴에 와닿네요. 사소한 메모 남기기는 언뜻 너무 간단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간단한것조차 사실 우리는 잘 하지 않잖아요. 


참 꼼꼼히도 테이핑을 해 놓았어요. 뽁뽁이로 5겹을 싸고 박스에 담아서 박스 전체를 또 돌돌돌돌 테이핑을 해 놓았어요. 가위로 이리저리 잘라가며 열심히 뜯어보니.. 세상에.. 제가 전혀 상상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그림이었어요. 결혼전에 류와 샤토루에 여행온적이 있습니다. 한달간 머물렀는데요. 그때도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 집에 머물렀지요. 집 바로 옆에 빨간색 벤치가 있어요. 당시 머물던 날들 중 어느 여름 날 저녁, 둘이 벤치에 않아 이클레어를 먹으며 잠시 낭만에 빠진적이 있었습니다. 류가 그랬어요. 혹시 제가 먼저 죽으면 이 곳 벤치에 와서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할거라고요. 너무 오글거리나요? ㅋㅋㅋㅋ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아주 아름다운건 여러분도 아실테지요. 온 세상에 금빛으로 보이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이클레어를 먹고 있는데 낭만적이 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그때 류가 사진을 찍어주었어요. 벤치에 앉아서 이클레어를 먹던 제 모습을요. 그 사진을 류의 고모에게 보내서 (고모님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시는데 아주 잘 그리세요!)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대요. 



아직 마지막 비밀을 벗기지 않아서 그대로 찍혔네요. 어때요? 그림 너무 잘 그렸지요? 그림으로 보니 그 당시가 더욱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느껴지고 이제는 정말 영영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 한국에 갈때까지 잘 소중히 잘 보관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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